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윈저 성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1세기 정복왕 [[윌리엄 1세]]가 처음 요새를 세웠다. 그가 잉글랜드를 정복했을 당시 잉글랜드 내부는 불안하기 그지없어서, 북쪽으로 쫓겨난 색슨족의 반격 외에도 [[덴마크]] 등의 외침의 위협도 있었다. 윈저 성은 [[템스강]]의 강폭이 인근에서 가장 좁은 길목에 지어졌다. 상기 언급된 적들이 침공했을 때 도하를 막기 위해서였다. 처음 지어졌을 무렵에는 모트 앤드 베일리 방식의 목성이었는데, 중앙의 원기둥형 구조물이 그 흔적이다.[[https://m.dcinside.com/board/alternative_history/203419|참고]] 짓기는 왕실이 지었는데 땅 소유권은 윌리엄 1세의 가신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아 왕실에서 [[임대료]]를 지불했다. 이후 한참이 지난 [[헨리 8세]] 때나 되어서야 왕실이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기나긴 임대를 청산했다. 어째서 진작 사지 않았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잉글랜드 왕실이 대대로 그렇게까지 부유하지는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. 이후로 여러번의 재건과 증축을 거쳐 현재도 [[영국 왕실]]의 공식 거주지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. 또한 [[영국 국왕]]을 기사단장으로 하는 [[가터 기사단]]의 총본산이기도 하다. [[제1차 세계대전]] 시기의 국왕 [[조지 5세]]는 당시 [[영국]]과 전쟁 중이던 [[독일 제국]]에 대한 국민적 반감 때문에 자신의 왕조명인 독일계 [[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]]란 명칭을 왕실 소유의 이 윈저 성에서 따온 명칭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영국의 왕조인 [[윈저 왕조]]이다. 성이 위치한 곳에서 템스 강의 바로 건너편에는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[[이튼 칼리지]]가 위치해있다. 이튼 칼리지가 윈저성 근처에 있는 이유는 본래 이튼 칼리지는 국왕 [[헨리 6세]]가 설립한 왕립학교를 모태로 하기 때문이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[파일:castle windsor on fire.png|width=100%]]}}}|| 1992년 11월 20일 누전으로 큰 화재가 났었던 적이 있다. 예배당 조명에서 튄 전기불꽃이 커튼에 붙으며 불이 시작됐고, 화재 당시 250여 명의 소방관이 15시간 가량을 화마와 싸웠으나, 응접실, 예배당 등 115개의 방이 타버렸다. 다행히 성 내부에 있던 고가의 미술품과 가구들은 불길이 번지기 전에 모두 밖으로 꺼냈기 때문에 큰 피해가 없었다. 그러나 복원에는 5년이 걸렸고 당시기준 총 3700만 파운드, 한화 약 '''548억원'''에 달하는 금액이 소요되었다. 복원 당시 반발이 만만치 않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왕실 [[면세]] 혜택을 포기함으로써 반대를 잠재웠다고 전해진다. 비용 역시 왕실이 해결했는데, [[버킹엄 궁전]]을 관광객들에게 개방했다.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킹엄 궁전을 찾아 윈저 성을 복원할 비용을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. 그 이후로 왕실 가족이 없는 휴가 기간, 주로 7~9월 경에는 버킹엄 궁전을 개방한다. 매년 6월에는 [[가터 기사단]]의 총회인 가터 데이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는데, 왕족을 포함한 모든 기사들이 기사단 예복을 입고 윈저 성에 모인다. 가터 데이 행사가 끝난 후에는 성 밖에서 마차를 타고 퍼레이드도 하기 때문에, 매년 가터데이 행사 때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